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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날개 안에서〉 | 더 큰 몸체 안에서 바라본 작은 존재의 시선 본문

기다리는 봄/4부

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날개 안에서〉 | 더 큰 몸체 안에서 바라본 작은 존재의 시선

holyhill 2026. 1. 11. 08:30

🪽 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날개 안에서〉 | 더 큰 몸체 안에서 바라본 작은 존재의 시선

안녕하세요. 시인 박영률입니다.

이 시를 쓰며 저는
움직임의 속도와
보는 자리의 높이가
얼마나 다른 세계를 보여 주는지를 생각했습니다.
같은 시간, 같은 날이지만
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
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.

 

〈날개 안에서〉는 비행의 시가 아닙니다.
이 작품은 기독교 시로서의 고백이며,
현실 인식의 대비 속에서
하나로 선 사상이 무엇을 보게 하고
무엇을 놓치게 하는지를 묻는 시입니다.
나는 작고,
몸체는 크며,
그 사이에 창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.

 

📜 시 전문 | 〈날개 안에서〉

날개에 창이 있어
창 밖으로
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파도
저 멀리 낙조는
지평선을 휘감아 도는데
우리의 날개는 공중에서 홰를 치며
괴음을 낸다

 

낙조로 물든 구름
그 신비의 색깔을 토해내는
구름 위에서
나는 한 마리의 작은 새

 

새는
더 큰 새의 몸체 안에서
그 가녀린 눈빛으로
창을 쪼아대고
창은 저물어 가는 우주의 신비를
펼치고 있다

 

그날, 바로 그날
서울 장안에서는
빙판길로 해서 야단법석을 떨며
짜증을 토하며 온갖 추태를
연출하고 있었다

 

🌿 시 해석 — 같은 날, 전혀 다른 풍경

이 시에서 ‘날개’는 보호이면서 한계입니다.
나는 날고 있지만,
내가 날고 있다는 감각은
괴음과 진동으로만 전해집니다.
그럼에도 창 밖으로 펼쳐지는 구름의 파도는
말없이 질서를 보여 줍니다.

 

저는 이 시에서
스스로를 한 마리의 작은 새로 놓았습니다.
더 큰 새의 몸체 안에서
나는 직접 날지 못하지만,
보는 눈은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가녀린 눈빛으로 창을 쪼는 행위는
도망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.
지금 이 높이에서
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었습니다.

 

문학·사상적 맥락 — 하나됨은 시야의 확장입니다

《하나로 선 사상과 문학》의 맥락에서
이 시는 대비의 윤리를 말합니다.
구름 위에서는
낙조가 우주를 감싸고 있는데,
땅 위에서는
빙판길 하나로
사람들이 분노를 토해내고 있습니다.

 

기독교 시로서 이 작품은
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.
다만 묻습니다.
우리는 어느 장면에 더 오래 머무는가,
어느 시야를 선택하는가를 말입니다.

 

더 큰 몸체 안에 있다는 사실은
무력함이 아니라
맡겨짐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.
그 안에서 보게 되는 신비는
통제의 결과가 아니라
허락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.

 

🙏 마무리 — 창을 향한 눈을 잃지 않기 위하여

이 시를 다시 읽으며
저는 제 삶이
지금 어느 높이에 놓여 있는지를 돌아봅니다.
괴음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,
아니면 창 밖의 질서를
여전히 바라보고 있는지 말입니다.

 

더 큰 날개 안에 있을 때에도
작은 새의 눈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,
분주한 땅의 소음보다
저물어 가는 우주의 신비를
끝내 보게 해 달라고
오늘도 저는 기도드립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