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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서울의 십자가〉 | 밤의 도시에 쏟아지는 피와 물, 씻김의 자리 본문

기다리는 봄/4부

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서울의 십자가〉 | 밤의 도시에 쏟아지는 피와 물, 씻김의 자리

holyhill 2026. 1. 11. 09:30

🌃 『기다리는 봄』 — 〈서울의 십자가〉 | 밤의 도시에 쏟아지는 피와 물, 씻김의 자리

안녕하세요. 시인 박영률입니다.

이 시를 쓰며 저는
서울의 밤을 올려다보았습니다.
불빛으로 가득한 도시 위에
수없이 치솟은 십자가들이
침묵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
오래 묻고 또 물었습니다.

 

〈서울의 십자가〉는 풍경을 노래한 시가 아닙니다.
이 작품은 기독교 시로서의 고백이며,
현실 인식의 한복판에서
하나로 선 사상이 왜
고통을 외면하지 않고
씻김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시입니다.
서울의 밤은 화려하지만,
그 밤은 피와 물 앞에서 결코 무죄하지 않았습니다.

 

📜 시 전문 | 〈서울의 십자가〉

서울의 밤에 수없이
치솟은 십자가
그 십자가는 공중에서 애처롭게
피를 흘리고 있다.

 

피가 쏟아지는 서울의 밤
어두운 곳에서는 죄악이 잉태되고
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”
독생자의 절규를 애써
아버지는 외면했다.

 

서울의 밤에
비는 오는데
비속에서
하염없이 피 눈물을 흘리는 십자가
그 십자가에서
피가 쏟아진다
물이 쏟아져 내린다.

 

그 피로
그 물로
때 묻은 자아가 씻겨진다
죄악의 서울을 씻는다

 

🌑 시 해석 — 빛나는 도시는 결백하지 않습니다

이 시에서 십자가는 장식이 아닙니다.
서울의 밤을 수놓은 상징이 아니라,
도시 위에 매달린 고발의 자리입니다.

 

수없이 치솟은 십자가는
도시가 얼마나 많은 죄악을
견디며 서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.
어두운 곳에서 잉태되는 죄는
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,
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깊어집니다.

 

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”라는 절규는
과거의 사건이 아니라
지금도 반복되는 물음입니다.
왜 외면되는가,
왜 침묵하는가를 묻는
현실 인식의 언어입니다.

 

문학·사상적 맥락 — 씻김 없는 하나됨은 없습니다

《하나로 선 사상과 문학》의 맥락에서
이 시는 통합 이전의 조건을 분명히 합니다.
하나됨은 덮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.
씻김을 통과할 때에만
비로소 하나가 됩니다.

 

기독교 시로서 이 작품은
십자가의 피와 물을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.
그 피와 물은
개인의 자아를 씻고,
도시의 구조적 죄악을 씻는
구체적인 요청입니다.

 

서울은 회개하지 않으면
계속해서 피를 요구하는 도시가 됩니다.
그러나 씻김이 시작되는 순간,
십자가는 죽음의 표식이 아니라
회복의 문이 됩니다.

 

🙏 마무리 — 서울의 밤을 위하여

이 시를 다시 읽으며
저는 서울의 밤을
정죄하기보다
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.
사랑하기 때문에
씻기기를 바라고,
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.

 

비가 오는 밤에도,
빛이 넘치는 거리에서도
십자가의 피와 물이
헛되이 흘러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
오늘도 저는 기도드립니다.

 

죄악의 서울이
씻김의 서울로 바뀌기를,
그 밤 위에
새 아침이 열리기를
조용히 기도드립니다.